전체 글 (1842) 썸네일형 리스트형 우두커니 /천양희 우두커니 / 천양희희망이 필요하다고 얻어지는 건 아니었습니다. 불행이 외면한다고 오지 않는건 아니었습니다. 사랑이 묶는다고 튼튼한 건 아니었습니다. 고통이 깍는다고 깍이는 건 아니었습니다.마음 한줌 쥐었다 놓는 날이면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되었습니다. 카누를 타고 /이인수 카누를 타고 이인수난로 위 주전자가 펄펄온몸 흔들며 어디론가 가잔다발목 묶인 코로나 시절뉜들 떠나고 싶지 않겠느냐카누라고 적힌 스틱커피끓은 물 빈 봉지로 노를 저어서걱서걱 뱃길을 나서볼까발달장애 아들 첫 직장인 카페구석자리에서 가슴 졸이는어머니를 만나볼까몇 달간 집에 못 간 채어린 딸과 영상 통화하면서도울지 않는 간호사를 찾아가 볼까동네 입구 과일 노점에서볼품없는 사과만 골라 담는퇴근길 영이 아버지를 지켜볼까일하는 아들 며느리 대신손자 다섯 맡아 키우는 할머니움막집을 들여다볼까줄 풀고 며칠째 돌아오지 않는다는성씨 형님네 똘이 찾으러 다녀볼까벌써 마음은 활활 뜨겁고배는 방 안에서 맴도는데꽃 샘추위 버티고 선 문밖어디부터 갈까나. 오늘의 약속 / 나태주 덩치 큰 이야기,무거운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해요조그만 이야기,가벼운 이야기만 하기로 해요아침에 일어나 낯선 새 한 마리가날아가는 것을 보았다든지길을 가다 담장 너머 아이들 떠들며 노는소리가 들려 잠시 발을 멈췄다든지매미 소리가 하늘 속으로 강물을 만들며흘러가는 것을 문득 느꼈다든지그런 이야기들만 하기로 해요남의 이야기, 세상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해요우리들의 이야기, 서로의 이야기만 하기로 해요지난 밤에 쉽게 잠이 들지 않아많이 애를 먹었다든지하루 종일 보고픈 마음이 떠나지 않아가슴이 뻐근했다든지모처럼 개인 밤하늘 사이로 별 하나 찾아내어숨겨놓은 소원을 빌었다든지그런 이야기들만 하기로 해요실은 우리들 이야기만 하기에도 시간이많지 않은 걸 우리는 잘 알아요그래요, 우리 멀리 떨어져 살면서도오래 헤어져 살.. 늦잠 / 윤옥난시인 아침 해는 중천누워 있고 싶다고 마냥 누워 있을 수 있는 위치의 팔자도 못되는데일어나기 싫어 시계 초침 돌아가는거 삐끔 쳐다 보고슬그머니 이불 당겨 뒤집어 썼다 벗었다왜 이리 피곤하지~ 중얼 중얼으~아~아~아일어나기 싫다날씨탓인가간밤 배부르게 먹고 그냥 잠들어 그런가 ㅋ시가 생각나 옮겨 적어봅니다 늦잠 윤옥난할 일도 갈 곳도 없는 일요일아침 6시40분평일 일어나던 시간습관이 된 몸이 잠을 깬다학교 안 가는 일요일쓸데없이 일찍 일어나 설쳐댄다고야단치시던 우리 엄마 그립다몸이 기억은 어떻게 바꾸어야 하나일요일은 늦잠 좀 자고 싶은데어디서 그러니 살찌지 하는 소리 들리는 듯 하지만십분만 ㅋ ㅋ ㅋ 아름다운 사이 /공광규 아름다운 사이 공광규이쪽 나무와 저쪽 나무가가지를 뻗어 손을 잡았어요서로 그늘이 되지 않는 거리에서잎과 꽃과 열매를 맺는 사이군요서로 아름다운 거리여서손톱을 세워 할퀴는 일도 없겠어요손목을 비틀어 가지를 부러뜨리거나서로 가두는 감옥이나 무덤이 되는 일도이쪽에서 바람 불면저쪽 나무가 버텨주는 거리저쪽 나무가 쓰러질 때이쪽 나무가 받쳐주는 사이 말이에요 얼굴반찬 공광규 옛날 밥상머리에는할아버지 할머니 얼굴이 있었고어머니 아버지 얼굴과형과 동생과 누나의 얼굴이 맛있게 놓여있었습니다가끔 이웃집 아저씨와 아주머니먼 친척들이 와서밥상머리에 간식처럼 앉아있었습니다어떤 때는 외지에 나가 사는고모와 삼촌이 외식처럼 앉아있기도 했습니다이런 얼굴들이 풀잎 반찬과 잘 어울렸습니다그러나 지금 내 새벽 밥상머리에는고기반찬이 가득한 늦은 저녁 밥상머리에는아들도 딸도 아내도 없습니다모두 밥을 사료처럼 퍼 넣고직장으로 학교로 동창회로 나간 것입니다밥상머리에 얼굴 반찬이 없으니인생에 재미라는 영양가가 없습니다 정안사 공광규 문인 에세이] 정안사기자명공광규 시인입력 2017.01.17 10:25댓글 0공유인쇄본문 글씨 키우기본문 글씨 줄이기지난해 연말 중국 상해 여행 중에 정안사에 다녀왔다. 백화점과 세계적 명품점이 있어 유럽의 거리를 연상하게 하는 상해시 남경서로에 있는 절이다. 정안사는 오나라(238~251년) 때인 247년에 창건되었으니 1800여 년이나 된 절이다. 안내 책자에 보니 절의 원래 이름은 중원사 또는 중운사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북송 태종 원년인 1008년에 지금의 정안사가 되었다고 한다. 원래 위치는 우쑹강 북쪽 기슭이었으나 강이 범람하여 절의 토대가 위험해지자 남송 시대에 이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원나라 명나라 시대에 수차례 무너지고 다시 지었다고 한다.지금 건물은 청나라 때인 1880년에 중건하였고,.. 송광사 가는 길 송광사 가는 길 우정연 시인(1957~)가을 햇살이 엿가락처럼 늘어나휘어진 살길을 힘껏 끌어당긴다늘어날 개로 늘어난 팽팽한 틈새에서저러다 탁, 부러지면 어쩌나더 이상 갈 길을 못 찾고 조마조마하던 차에들녘을 알짱대던 참새 떼가 그걸 눈치챘는지익어가는 벼와 벼 사이를 옮겨 다니며햇살의 시위를 조금씩 느슨하게 풀어주고 있다비워야 할 일도 채워야 할 일도 없다는 듯묵언정진 중인 주암호를 끼고한 시절이 뜨겁고 긴 송광사 가는 길참, 아득하기만 하다 ▲공광규 시인 /1986년 등단. 시집 등 다수 시집 출간. 2009년 윤동주문학상, 2.. 이전 1 2 3 4 5 6 7 ··· 231 다음 목록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