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의 벗은 클림트의 'Kiss'라는
그림을 보고 아내 에우리디케가 죽은
것을 비탄하여 저승까지 갔던 오르페우스의 사랑 이야기를 떠올렸다 합니다.
저승의 명부에까지 찾아간 뜨거운 사랑에 지옥의 마왕까지 감복하여
이미 죽었던 아내를 돌려주었다는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사랑을
나의 벗이 생각나는 동안 나는
천 년 전 한반도 속의 작은 나라
신라에 살았던 수삽석남 (首揷石南)
설화 속의 최항이란 사내를 떠올리고
있었으니 우연치고는 참 묘한 우연이다 싶습니다.
ㅡ 신라 때에 최항이란 사람이
살았는데 한 여자를 사랑했으나,
부모의 허락을 받지 못해 몇 달
동안 만나지 못하다가 그리움이
병이 되어 그만 죽고 말았답니다.
죽은 지 8일째 되는 날 사내의 혼령이
여자를 찾아가자 사내가 죽은 걸
알지 못하는 여자는 그를 반가이
맞았고 사내는 자신의 머리에
꽂고 있던 석남꽃 가지를 꺾어 여자에게 건네며 부모가 그대와 살도록 허락하여 찾아 왔노라말했습니다.
여자는 기쁜 마음으로 그의 집까지
따라갔는데 먼저 담을 넘어
들어간 사내는 날이 밝아 와도 나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이윽고 날이 밝아 그 집 사람이 문
앞에 서 있는 여자에게 까닭을 물어
사실대로 말하였더니 그 집 사람이
말하길,
그가 죽은 지 이미 8일이 되어
오늘이 바로 장례날이란 것이었습니다.
여자는 그가 건네준 석남꽃 가지를
내보이며 그의 머리에 꽂힌 꽃가지를
확인해 보도록 하였는데 관을 열어
보니 과연 사내의 머리엔 석남꽃
가지가 꽂혀 있고 옷이 이슬에 젖어
있었습니다.
여자가 그를 따라 죽으려 하자
그가 다시 살아나 백년해로를 하며
잘 살았다는 것이 수삽석남의
설화입니다. ㅡ
그러고 보면 서양에서나 동양에서나
사랑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 지에
대해선 별다른 이견이 없는 듯합니다.
이처럼 아름답고 신비로운 설화를
담고 있는 '석남꽃'은 본래의 이름이
아니랍니다.
이 꽃의 원래의 이름은 다름아닌
'노란만병초' 입니다.
여름철에 피어나는 노란만병초는 중부
이북의 높은 산에서 자생하는 귀한
수종입니다.
백두산의 야생화 사진을 찾아보니
꽃이 만발한 노란만병초 군락이
단 번에 눈을 사로 잡습니다.
몇 해 전 세상을 떠난 서정주 시인의
시에도 이 설화를 읽고 쓴
(머리에 석남꽃 꽂고) 가 있습니다.
제가 석남꽃 한송이 만나기 힘든 계절에 노란만병초를 화제로 삼은
건 아무래도 친구가 들려준 사랑
이야기에 잠시 취했기 때문인가 봅니다.
ㅡ 가지산 석남터널에서 ㅡ
無君亦 無我 라
무군역 무아
君去亦 我去 로다.
군거역 아거
그대 없으면 나도 없고
그대 떠나면 나도 떠나리.
★초운 오석환 선생님의 한시 이야기 에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