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동촌비행장으로 마릴린 먼로를 마중나간 최은희와 백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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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4시간 전
좌로부터 최은희, 마릴린 먼로, 백성희
대구 동촌비행장으로 마릴린 먼로를 마중나간 최은희와 백성희
최은희 납치사건을 그린 반(anti)추리소설
ㅡ『미완의 극』의 ‘미완’은 무엇인가?
이승하
이병주의 소설은 크게 네 부류로 나눌 수 있다. 등단작인 중편소설 「소설ㆍ알렉산드리아」를 비롯한 그의 중ㆍ단편소설은 문학성이 아주 뛰어나다. 「변명」 「망명의 늪」 「철학적 살인」 「예낭 풍물지」 「쥘부채」 「그 테러리스트를 위한 만사」 「정학준」 등에는 역사의 회오리바람 속에서 부침과 굴절을 거듭한 지식인들의 초상이 잘 그려져 있다. 소설집만 해도 생시에 9권을 냈는데 1968년에 낸 『마술사』를 필두로 『예낭 풍물지』(1974), 『철학적 살인』(1976), 『망명의 늪』(1976), 『삐에로와 국화』(1977), 『낙엽』(1978), 『서울의 천국』(1980), 『허망의 정열』(1982), 『그 테러리스트를 위한 만사』(1983)이다.
그런데 이병주의 이름을 빛나게 한 것은 중ㆍ단편소설이 아니다. 『관부연락선』 『지리산』 『산하』 『그해 5월』 『바람과 구름과 비』 등 한국 근ㆍ현대사의 모순과 정면 대결을 꾀한, 작가의 역사의식과 사상적인 고뇌가 삼투되어 있는 대하소설 작품군이다.
또 한 부류는 대중소설이다. 낙양의 지가를 천정부지로 뛰어오르게 한 『비창』 『운명의 덫』 『행복어 사전』 『그를 버린 여인』 『여인의 백야』 『무지개 연구』 등은 독자들에게 이병주 하면 대중소설의 대가, 즉 남녀상열지사를 잘 구사하는 소설가라는 인상을 심어주었다. 대하소설을 제외하고 30편이 넘는 장편소설이 신문연재소설이었다. 한꺼번에 여러 군데 신문에 동시에 연재하는 절륜의 필력은 동시대 소설가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그리고 또 한 부류는 역사적인 인물의 소설화 작업이었다. 『소설 정도전』 『소설 허균』 『포은 정몽주』 『소설 장자』 『대통령들의 초상』 등을 보면 역사상의 주요 인물에 대한 관심이 아주 컸음을 알 수 있다.
1982년에 소설문학사에서 2권짜리로 펴냈고 2021년에 바이북스에서 새 판이 나온 『미완의 극』은 이상의 네 가지 부류 중 어디에도 들어가지 않는다. 연애소설도 아니고 (근ㆍ현대사를 다룬) 역사소설도 아니다. 이 소설을 쓰게 한 직접적인 계기는 영화배우 최은희 납치사건인데 실제적인 최은희 납치사건을 르포르타주 식으로 그린 것은 아니다. 시대소설이라고 해야 할지 사회소설이라고 해야 할지 이름 붙이기도 애매한 이 소설은 이병주를 거론할 때 전혀 언급되지 않은, 평가의 대상에서 누락되고 만 소설이다. 일단 작가에게 이 이야기를 소설로 다뤄봐야겠다고 마음먹게 한 ‘최은희 납치사건’의 전말을 살펴본다.
1926년생인 최은희는 해방공간인 1947년에 영화 <새로운 맹서>로 데뷔한 뒤 <밤의 태양>(1948), <마음의 고향>(1949) 등을 찍으며 신생 스타로 떠올랐다. 1954년, 마릴린 먼로가 야구선수 조 디마지오와 결혼한 뒤 일본으로 신혼여행을 가면서 한국에 들렀다. 주한미군 장병들 위문차 한국에 들러 달라는 주한미사령관의 요청에 응했던 것이다. 세계적인 배우를 마중하러 대구 동촌비행장에 나간 우리나라 대표 배우는 중견 백성희와 신예 최은희였다. 서른도 되기 전이었는데 최은희는 그때 이미 한국의 ‘대표급’ 배우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1953년에 다큐멘터리 영화 <코리아>에 출연하면서 신상옥 감독과 사랑에 빠져 1954년 결혼식을 올렸고, 이후 두 사람은 함께 영화를 만들며 한국영화의 중흥기를 이끌었다. 신상옥 감독 「사랑 손님과 어머니」는 한국영화사의 명작으로 거론되는 작품이다.
그런데 1978년 1월 14일, 최은희는 영화 합작 의뢰를 받고 홍콩에 갔다가 김정일의 지시에 의해 북한 공작원에 의해 납북된다. 홍콩에서 납치되어 마카오로, 마카오에서 중국으로 가서 북한까지 끌려간 것이다. 당시 최은희는 남편과 이혼한 상태였다. 신상옥 감독이 배우 오수미와의 사이에 아이까지 낳자 격분, 이혼을 단행하고는 배우 생활은 접고 안양예술학교(뒤에 안양예술고등학교로 개칭)의 교장을 하면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던 터였다. 학교 발전을 꾀하고 있던 최은희는 거액의 출연료 제의에 귀가 솔깃해 홍콩으로 갔던 것이다. 김정일이 최은희를 왜 납북했는지는 확실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북한 영화의 발전을 꾀하려 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이혼한 전처를 찾아 홍콩 등지를 헤매던 신상옥도 그해 7월 19일에 납북된다.
신상옥 감독, 김정일 주석, 최은희 배우
영화 제작에 지대한 관심이 있던 김정일이 두 사람에게 영화를 만들게 해 국제영화제에서 상도 탔으니 납치의 이유는 알 만한 일이었다. 타의에 의한 어색한 만남이었다. 이들의 상봉은 북한에 따로 끌려온 지 5년이 지난 1983년에야 김정일의 주선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만난 자리에서 두 사람은 어색하게 포옹을 한 모양이었다. 신상옥 감독은 만약 자기 배우들이 그랬으면 화를 내며 ‘컷’ 하고 외쳤을 동작이었다고 회상했다. 최은희는 전남편이 그래도 자기를 찾으려 동분서주했다는 것을 알고는 미움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고 한다. 두 사람은 북한에서 재결합한 상태로 영화인으로 살아갔다. 최은희의 경우 북한 체류 기간이 8년이었다.
신상옥은 탈출을 몇 번 시도하다 실패해 교화소로 끌려가는 등 곤욕을 치르기도 했지만 최은희는 특별한 보호를 받으며 살아간 듯하다. 아마도 북한 제작 영화의 자문 역할 정도를 했을 것이다. 신상옥은 반성문에다 충성 맹세를 한 이후 김정일의 신임을 회복한다. 두 사람은 김정일의 생일 파티에 초대를 받을 정도로 고위직 신분으로 삶을 꾸려간다. 하지만 자유가 없는 감시체제 속에서의 삶이었다.
두 사람은 1986년 3월, 오스트리아의 빈 방문 중 미국 대사관에 진입해 망명에 성공, 10년 넘게 미국에서 산다. 한국의 정보부에서는 신상옥의 납북을 자진월북으로 규정하고 있었기에 한국으로 올 수는 없었다. 게다가 북한에서 이들 부부는 김정일의 비호 아래 <돌아오지 않는 밀사> <탈출기> <소금> <춘향전> <불가사리> 등 여러 작품을 만들었다. 모스크바 국제영화제에서 최은희가 여우주연상을, 신상옥이 감독상을 탔으니 두 사람은 북한 영화를 빛낸 인물이었다. 신상옥 감독에 대한 정보부의 규제가 풀리자 부부는 1999년에 영구 귀국한다. 신상옥은 2006년에, 최은희는 2018년에 사망한다.
이병주는 두 사람이 북한에서 살아가고 있을 때 이 소설을 썼다. 그 당시에는 두 사람의 북한에서의 활동 사항이 남쪽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베일에 가려진 북한 생활을 추측해서 쓸 수는 없었고, 납치되기까지의 과정을 상상력을 발휘하여 써보기로 한다. 『미완의 극』은 장편치고도 꽤 긴 소설이다. 제1권 395쪽, 제2권 415쪽의 소설을 쓰게 한 원동력은 무엇일까. 이병주는 후기에서 최은희 배우와 만났던 날을 회상하고 있다.
그녀가 홍콩으로 떠나기 사흘 전의 밤, 나는 전에 대사(大使)를 지낸 M군의 집에 만찬 초청을 받았는데 공교롭게도 그날 밤 그녀를 만나게 되어 있어 M군에게 그녀를 같이 초청해 달라고 간청한 결과 합석하게 되었다.
홍콩으로 떠나기 사흘 전에 나눈 대화의 내용도 소설 후기에 자세히 나온다. 이병주는 최은희를 “한국이 낳은 위대한 배우”, “살아 있는 문화재”라고 높이 평가한다. 막 나이 쉰이 된 최은희에게 이병주는 인간적인 호감 이상의 감정, 즉 연모의 정을 느끼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만찬장에서의 만남 뒤에 최은희는 홍콩으로 갔으며 행방불명이 된다. 언론에서는 납치되어 북한으로 끌려갔다고 하지만 후기를 보면 이병주는 최은희가 북한에 있지 않다고 생각하였다. 북한에 있다는 것은 김정일의 보호 아래 있다는 것인데, 그렇게 상상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도대체 왜 사라진 것일까. 누구의 손에 의해 사라진 것일까. 살았는가 죽었는가. 살아 있다면 어디에 있는가. 도대체 뭘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왜 언론도 추적하지 못하고 있는가. 행방불명된 지 4년 5개월 뒤에 이병주는 전작 장편소설을 세상에 내놓으면서 이렇게 말한다.
소설 『미완의 극』은 한 편의 추리소설이라기보다 우리의 경애하는 여배우 최은희를 기념하고자 하는 내 나름대로 부른 추억의 엘레지이다.
추리소설이라기보다는 추억의 엘레지라고 한 말이 인상적이다. 이 소설은 이병주의 여러 소설 중에서 아주 특이한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평가는커녕 거론조차 된 일이 없었다는 것이 안타깝다. 이번에 바이북스에서 재출간되는 것을 계기로 독자대중의 관심이 이 작품에 기울어지기를 바란다. 그 이유에 대해 지금부터 살펴나갈 것이다. (하략)
이병주 선생의 친필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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