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창에 관한 글이 있어 올립니다. ^^
동백 붉은 날엔
변산(邊山)의 매창을 생각한다.
숨 막히던 봉건시대.
남성우위의 가부장 사회에서 여성의 문학적 재능은 운명적인 고통이었으니
평생을 불우하게 살다 요절한 천재 여류 문학가 이매창이 누워있는 곳을 작년 이때 쯤 찾았던 기억이 난다.
매창의 시는 한에 젖은 눈물자욱이다. 그러면서 가없이 따뜻한 정(情)이다. 그녀는 봄꽃처럼 주체할 수 없이 피어 나는 시혼(詩魂)을 부안을 찾던 사람과 아름다운 자연에다 쏟았다.
그 마음의 길과 향기로운 시어(詩語)가 어디로 흘렀겠는가.
여항(閭巷)에 회자되던 주옥같은 시를 마을 사람들이 돈을 모아 이웃 개암사에서 시집으로 출간한다.
자식도 제자도 없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기녀(妓女)의 한시 56수를 모아 2권 1책의 목판본을 찍어낸 때가 그녀의 사후 58년 만의 일이었으니
여성에게 시를 금하던 시대에 이러한 사건이 어찌 흔한 일이던가. 생각할 수록 놀랍고도 사랑스런 미담이 아닐 수 없다.
그후 개암사를 찾던 사람들이 너나 없이 다투어 시집을 가져가는 바람에 절집 살림이 거덜나겠다고 우려한 주지가 그만 목판을 불살라 버렸다고 기록은 전한다.
더없이 기막힌 사실이 근래에 밝혀졌다. 국내에서 찾아 볼 수 없던 당시의 목판본 원본이 어찌된 요량인지 미국의 하버드대학교 엔칭박물관에서 발견된 것이다.
그녀의 애절했던 삶과 사무치던 문혼(文魂)을 생각하면 이 어찌 '운명'같은 일이 아니겠는가.
38세의 꽃다운 나이, 요절한 그녀의 무덤을 찾아 눈물젖은 삶을 애도하며 참으로 휴머니티하고 아름다운 시혼(詩魂)에 술 한 잔을 바쳤다.
그리고 동행한 여성 문화운동가 일행과 부안의 고 신석정 시인의 손자 신희삼 동신대 교수와 이 지역 출신의 박방영 화백이 펼치는 긴 화폭위의 '진혼 퍼포먼스'도 무덤위에 올렸다.
환생하시라 부디.
오늘 그대에게 바치는 저 선연한 동백꽃 붉게 피듯 이 땅에 다시 오시라.
그래서 더럽고 오만한 권력이 강제한 계급의 운명과 신분의 족쇄를 풀고 성차별과 가난과 병마의 고통에서 해방되어 당신의 자유롭고 천재적인 문학적 영혼을 세계 만방에 마음껏 펼치시라.
귀경길 머리속에 이는 생각을 단가 세 수에 담아 세계 여성의 날... 그녀의 영전에 삼가 부쳤다.
踏梅窓(매창을 거닐며)
無有
其1
홍매 피는날에 인향(人香)이 그리워서
오백년 세월건너 변산(邊山)을 찾았더니
천고(千古)에 변하지 않은 사랑만이 남았더라
其2
이화우(李花雨) 피고 지고 몇 해나 흘렀는가
강산도 인심도 모든게 변하지만
시혼에 흐르는 정은 강물처럼 면면하리
其3
천상의 글재주는 규원(閨怨)에 눈물지고
숨 막히던 시대를 동백처럼 요절했네
새날을 삼가 바치니 매화처럼 오소서
민초의 삶을 긍휼히 여기던 백제시대 검단대사의 전설은 변산 곰소만의 하얀 염전위에 지금껏 펼쳐지는 사은제(謝恩祭)로 입증된다.
변산을 닮은 아름다운 바닷가의 고성.
환생한 매창이 거문고 대신 첼로를 안고 자신의 '운명'을 연주하니 들어보시라.
어쩌면 그대 운명의 멜로디 일 수도 있으리니...
Ana Rucner's "Destiny"
-https://www.youtube.com/watch?v=yIKdC-S54zw&feature=youtube_gdata_play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