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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석환 글

 

醉客執羅衫

취객집나삼

羅衫隨手裂

나삼수수열

不惜一羅衫

불석일나삼

但恐恩情絶

단공은정절

 

취한 님

비단 적삼을 잡아당기니,

비단 적삼

손길 따라 찢어집니다.

비단 적삼 하나야

아깝지 않으나,

다만 은혜로운 정

끊어질까 두렵습니다.

 

역시 조선 중기 부안의 명기名妓로 시와 거문고에 능했던,

이매창李梅窓의 <증취객贈醉客>이다.

 

시인이 기방妓房에서 거문고와 춤과 노래로 이름을 날렸던 이매창이기 때문에,

취한 손님은 글자 그대로 술에 취한 손님일 수도 있고,

오랜만에 찾아온 반가운 님일 수도 있다.

 

기다리던 님이었건만,

오랜만에 찾아와서는 술과 이야기보다 사랑에 급했나 보다.

 

저고리 앞섶을 거칠게 잡아당기니,

손길 따라 옷깃이 찢어지고 있다.

 

님을 만날 때 입으려고 아껴두었던 비단 옷이었는데,

밤새 많은 시간이 있어 서두르지 않아도 되건만,

님은 막무가내로 옷깃을 잡아당긴다.

 

비단 옷도 그냥 비단 옷이 아니다.

 

님이 사랑을 시작할 때 사준 것으로,

귀하고 소중한 의미가 있는데,

지금 님의 거친 손길에 찢어지고 있는 것이다.

 

님이 그동안 사랑에 목말라 그려러니 하면서도,

시인은 지금 이 비단 적삼처럼 님의 사랑이 끊어질까를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은 오히려 귀한 비단 옷이 찢어지는 것은 아깝지 않다고 하였다.

 

비단 옷이야 또 사면 되는 것이고,

찢어지면 꿰매면 되는 것이다.

 

기다림의 끝은 행복이 아니라,

더욱 힘든 또 다른 기다림을 남긴다.

 

사랑은 그런 것이다.

기녀의 사랑은 더욱 그럴 것이다.

 

간과 쓸개라도 빼줄 것 같은 님의 사랑도,

한 번 떠나가면 소식조차 없는 경우가 허다許多하다.

 

다 주고 싶지만,

주고나면 떠난 뒤의 아픔과 그리움이 더욱 간절하기에,

망설여지고 두려운 것이다.

 

비단 적삼이야 찢어진들 어떠하리.

님의 사랑만 영원할 수 있다면,

더한 것을 주어도 아까울 것이 없다.

 

사랑 앞에 선 여인의 설레임과 불안감이 절묘하다.

 

그 옛날 순이도 그러했던가.

 

오늘은 유난히 달이 밝다.

순이가 보고 있어서 그런 것일까.